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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nog1 @constellayoom 무도는 우리의 마음에 달려 있는 건데 어떤 의미든 한자를 가릴 이유는 없겠죠. 그나저나 오늘처럼 번개 치는 밤엔 공포영화처럼 와인이 딱입니다. 잔은 다들 마음에 드는 걸로.:) posted at 02:15:08
극단의 시적 서정으로 나는 재생할 수 있을까. 낯선 물질들로 희망이 침식될 때마다 나는 알튀세르의 자서전을 읽는다. "삶이란 그 모든 비극에도 여전히 아름다울 수 있다. 그렇다,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알튀세르) http://t.co/AqTbvlBu posted at 23:04:30 @constellayoom @Nanog1 반칙 없이 마시는 술은 술이 아니죠:) 대학시절 졸업기념 은사님과의 저녁식사 자리에서 형이상학을 전공하신 노교수님께 누군가 "선생님 주도란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교수님께서 허허 웃으시며 "주도는 '무도'라." posted at 19:12:54
강연을 듣는 것은 어떤 이론의 요약이나 제품의 설명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존 지식에 포섭되지 않는 새로운 단상의 극적인 출현과 상상력의 해방을 얻기 위해서다. 뼈를 베는 목소리로 상상력을 깨워내지 못하면 강연은 텍스트와 이미지의 나열에 불과하다. posted at 17:34:29 '광신'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 가치에 반하는 '광신주의'가 문제다. 반휴머니즘과의 싸움에 이겨야 광신의 유토피아적 순수성을 회복할 수 있다. "원칙들에 따라서 꿈꾸고자 하는 망상, 즉 이성을 가지고 미친 듯이 날뛰고자 하는 망상"(칸트) posted at 15:15:59 기술은 유기체적으로 욕망하고 늘 스스로의 욕망을 실현해왔다. 어쩌면, 인간이 웹이라는 기술을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체가 곧 웹인지 모른다. "기술은 그 자체의 아젠다를 가진다."(케빈 켈리) #SDF2012 http://t.co/PotHXwLE posted at 09:54:21 나의 존재감은 결국 끝없는 자기 부정의 결과로 드러난다. 나는 지금 이곳에서 현재의 내가 아니라 미래의 나를 살아야 한다. 나는 '밤낮 달아나고 있어야' 내가 될 수 있다. "디렉터가 디렉터처럼 행동하면 디렉터밖에 될 수 없다." (K컨설팅펌 Y상무) posted at 00:30:34
초연결 사회에서의 생존은 곧 '공존'이다. 디지털로 매듭화된 세계를 살아간다는 것은 타자와의 관계성을 그리고 타자와의 접점을 생성하는 공간을 끊임없이 '재정의' 하는 것이다. 연결은 고착된 사슬이 아닌 공존을 향한 '탈연결'이자 '재연결'이어야 한다. posted at 14:15:45
누군가에게 '은유'는 누군가에게 '악보'이며 누군가에겐 '실존'의 구체성이다. 떨어지는 운석처럼 내 은유의 정점에 이르는 날 시간은 느려지고 장소는 확장된다. 마침내 붉은 심장 위로 꽃은 피어오르고 착란이 쏟아내는 감각 사이 광란같은 사랑이 몰려온다. posted at 03:21:39 봄꽃이 저무는 5월의 비극도 때로는 낙원의 유적이 된다. 구원이란 결국 기억의 고행을 마주하는 순간이다. "저 사라지는 삶이 진실로 낙원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지만, 그것은 사라지면서 이렇듯 낙원의 한 형식으로 기억된다." 황현산, <잘 표현된 불행> posted at 02:09:03
타자의 '인정(recognition)'이 지배하는 소셜 네트워크 시대, 타자의 응시가 사라지면 우리는 불안에 빠진다. 읽히지 않는 글은 결국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될테니까. posted at 02:49:18 @circleframe PC 시절엔 그래도 다성성(多聲性)이 살아있었는데 지금은 균질성이 지배하는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디스플레이 사이즈 하나가 세상을 이렇게 바꿀 줄은 몰랐었습니다. posted at 02:27:48
이메일과 문자들, 그리고 SNS와 뉴스 기사를 소진하면서 나는 5인치 형상으로 수축해가고 내가 기억해야 할 모든 것들은 이제 내가 아니라 이 작은 스크린 속으로 숨어들었다. 나의 아이덴터티는 결국 내 손 안에 들러붙은 유령같은 금속 조각이 되어버렸다. posted at 22:56:57
모든 창조적 기획은 한 시대의 비정규성에서 태어난다. 생생한 날것도 프로그램화된 질서로 구획되면 그 형상은 무거운 납덩이로 가라앉는다. 이제 우리는 위반의 자리로 도주할 때가 되었다. 견고했던 영토를 떠나 제복도, 계급장도 없는 '파르티잔의 캠프'로. posted at 21:53:48 스마트 기기들과 소셜 세계에 '연결'될수록 우리는 실제 삶으로부터 '고립'되는 것일지 모른다. 연결 그 자체에 매달리면 몸으로 묻어나는 숨결과 목소리는 사라지고 우린 결국 외로운 '통 속의 두뇌'로 살아가게 된다. http://t.co/wPRyoikS posted at 00:54:27
예술은 기원도 목적지도 없는 실패의 반복이자, 몰락을 재현하는 은유의 형벌이다. "예술가가 된다는 것은 실패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은 감히 실패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그 실패는 예술가의 세계요, 실패로부터 움츠리는 것은 유기이다."(사뮈엘 베케트) posted at 21:40:10 질척한 봄비에 분열하는 꽃들, 이제는 불 속에 던져버려 애초의 재로 돌려보내자. 봄꽃은 겨울 내내 절박함에 타다 남은 희망의 잔해에서 태어났으니까. 봄에 대한 모든 기록에서 낡은 가지처럼 그 이름이 무너져 내릴 때 반역적 형상에 반역할 날이 시작된다. posted at 18:56:42
진보는 견고한 영토를 구축하려는 현실의 권력에서 끊임없이 도주하는 곳에 있어야 한다. 권력에서 끝까지 벗어나 있는 자만이 끝내 아름다워질 수 있다. 진보가 진정 진보적이기 위해선 모든 점유와의 결별을 결단하고 흙과 땀으로 제 '형상'을 비워내야 한다. posted at 20:30:30 "내가 가장 빈번히 들었던 것은 “세상을 바꾸려면 권력을 장악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 권력을 장악해야 한다는 이유로 세상을 바꾸기도 전에 사람들이 어떻게 먼저 바뀌는지를 줄곧 지켜봐왔다."(홍세화) http://t.co/lgvfnsao posted at 19:41:13
상상을 개화시키는 자유, 내가 열광하는 모든 것. "인간은 어떤 끔찍한 역사적 좌절에 자칫 겁을 먹게 될지라도, 아직 제 자유를 믿을 자유가 있다. 흘러가는 낡은 구름에도, 난관에 부딪치는 자신의 맹목적인 힘에도, 그는 저 자신의 주인이다."(브르통) posted at 23:40:38
현란한 어둠 속 내 심장을 앞지르는 가로등 온기가 나뭇가지를 덮었다. 나는 밤이 깊을수록 단단해지는 가로등 불빛처럼 살고 싶었다. 까맣게 잊혀졌던 결단들이 박동소리로 회귀할 때 누군가는 죽어가면서 제 꿈을 바친다. http://t.co/PYFPyDbt posted at 01:15:42
@circleframe 네. 언젠가. 꼭. posted at 21:01:32 @circleframe 아... 저희 집이면 더 바랄 것 없겠지만 여긴 제가 자주 가는 핸드 드립 전문 까페입니다.:) posted at 20:50:57 커피는 리얼리즘의 모든 기표들로부터 도주하는 과정이자 내가 접속하지 못했던 낯선 영토로 확장하는 새로운 잉여이며 날마다 다른 감각으로 폭발하는 낭만주의적 폐허의 다발이다. 나에게 커피는 그 자체로 불꽃의 집결지다. http://t.co/OXOv88PG posted at 16:21:15
책은 활자의 리얼리티일 뿐 아니라 책장 겹겹이 쌓인 촉감의 두께를 담아내는 다층적 상상의 배후다. 교차되고 감촉된 지점이 많을수록 밤은 밤마다 다르게 생성되고 미래는 풍부해진다. 사막 위 바람이 그려내는 모래 무늬처럼 나는 늘 상상 바깥으로 탈선한다. posted at 23:52:07
커피는 무방비적 발열체였다. 커피는 나를 향한 열병이었고 비물질적 화력의 집결체였다. 커피를 마실 때마다 '정상'이라는 관점에 굴복하지 않는 날것의 감정들이 섬광처럼 달려들었다. 갈비뼈 사이 억눌러둔 자기 표현에 대한 충동만큼 매혹적인 사건은 없었다. posted at 23:28:35 커피도 결국 '비물질적 소비'이자 하나의 '연결 소비'다. "상품의 소비에서 행위나 장소의 소비로, 물질의 소비에서 비물질의 소비로, 기호 소비를 통한 탈주에서 접속과 인정을 위한 공감 추구로의 변화는 계속된다." 사사키 도시나오, <큐레이션의 시대> posted at 21:04:44
세상의 모든 장소들은 어떤 기억을 지우는 중이며 세상의 모든 순간들은 어떤 기억이 되고 있는 중이다. 나도 언젠가 개념적 장벽 건너편 부드러운 흙을 밟을 수 있을까. 기호의 기득권이 무너지면 단어는 더 이상 단어로 들리지 않고 찬란한 착란이 시작된다. posted at 03:31:31
봄꽃의 도발은 제 끝을 모른다. 시절은 어수선해도 봄은 생동하는구나. [pic] — http://t.co/G4JQMp7g posted at 19:16:31 @constellayoom @Nanog1 하와이안 코나의 밸런스는 지독할 정도로 완벽하죠. 가장 디테일한 커피향을 갖춘 코나는 커피의 절대값 아닐까 합니다. 코나의 운명은 곧 커피의 운명이자 사랑의 운명이라 믿고 있습니다. posted at 01:42:41 @constellayoom 봄인지 가을인지 구분 안되는 이런 날씨가 실은 시대의 전위적 계절이죠. 모질게 상상할수록 체험의 경계는 사라집니다. @Nanog1 posted at 00:58:25 @Nanog1 커피를 많이 마시면 기억력과 추리력이 강화된다는 기사도 얼핏 읽었습니다. 반면 탈모와 고혈압과는 통계적 유의성이 있다는 악성 데이터도 있네요. 어쨌든 에티오피아에는 꼭 가보고 싶습니다.:) posted at 00:55:15 @blossomsim 통계청 기준 2011년 우리나라 경제활동인구가 하루 평균 1.5잔의 커피를 마셨다던데 딱 한 잔만 마신다면 너무 미약하죠. 절제의 미학인가요.:) posted at 00:50:17
오늘도 커피 7잔 째. 내가 블렌딩된 에스프레소보다는 예가체프처럼 핸드드립으로 내린 스트레이트 커피를 열망하는 것은 원두의 원산지 표기에 담긴 아프리카와 남미의 신비주의적 기운을 기대해서이다. 언젠가 난 에티오피아의 커피농장에 과연 입성할 수 있을까. posted at 23:46:43 @jhkim2774 생각 자체야 늘 '날것'으로 단순하게 출현하지만 '말'과 '글'이 될 땐 상상적 비약이 새로운 문맥을 만들죠. 난해한 건 다 제 탓입니다.:) posted at 19:21:11 @jhkim2774 스마트폰을 비롯한 모든 디지털 기기 그리고 디지털적 사고 자체와의 단절이죠. 적어도 일주일의 하루는 '디지털 금식일'로 지정해야겠습니다. posted at 18:55:41 @circleframe 네. 저도 아날로그적 감성을 되찾아야할 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posted at 18:50:47 손목과 눈의 통증이 마침내 선을 넘었다. 열 손가락은 내 것 아닌 것처럼 제멋대로 굴었고 화창한 날씨에도 뿌연 안개가 두 눈을 채웠다. 이제 나의 마지막 미션은 '디지털 금식'일까. 스마트 시대, 디지털 기표의 망은 현란하지만 육체의 위계는 무력하다. posted at 14:07:37 @sinabro_na '봄비' 자체가 의외로 난해해서 그렇습니다.:) posted at 10:56:51
봄비가 온통 난리다. 습곡에서 불어오는 바람 앞에서 계절의 재현은 힘을 잃고 화려했던 색채들이 사방으로 분열한다. 산산조각난 빗방울들은 금기의 극한점을 따라 무질서한 조형공간을 만들었고 얼굴을 파고드는 현기증에 나는 비활성화된 봄날의 살빛을 추모한다. posted at 13:10:25 @esgrenoble 앗. 수 십년은 아니고 십 여년.:) posted at 01:02:02 @esgrenoble 전 가지 않았던 길을 처음 걸을 땐 수 십년 전 첫 소개팅의 느낌 같은 것이 스물스물. posted at 00:55:19 @esgrenoble 산책은 늘 새로운 길을 찾아내야 제격이죠. 야심할수록 더 스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posted at 00:4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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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update 05/30 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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